복음전파/03 귀한 말씀

"마취과 의사와의 만남"

핑안 2009. 9. 30. 15:31

  외부 집회를 다니면서 누리는 기쁨 중에 최고의 기쁨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달에는 특히 의사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휴스턴의 M.D. Anderson Cancer Center와 부산의 고신의대가 바로 그곳이다. 특히 이번 고신 의대 집회에서는 의학부장이신 김세환 교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의 전공은 마취과(anesthesia)였다.
  마취의 역사는 1 8 4 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 모턴이라는 사람이 에테르를 통한 마취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치과의사인 H. Wells가 이를 뽑는데, 통증을 없애는 방법을 개발하여 마취역사의 진일보를 가져왔다. 특히 일본인 하나오카를 통해서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과거에는 치료라는 것이 "고통"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마취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치료행위였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의 칼을 대는 수술이 가능해 진 것도, 감염의 위험에서 해방된 것과 마취학의 발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취는 매우 중요한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취에는 목적이 있다. 다만 고통을 경감시키자는 이유가 아니라, 마취는 수술을 위한 예비단계로서 필요한 것이다. 무조건 통증을 없애기 위한 것이 마취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복신앙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가장 불건전한 신앙 중의 하나이다. 왜? 기복신앙은 평생 "문제"와만 투쟁을 벌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통"과만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낙방의 고통을 이기게 해달라, 결혼 못하는 외로움의 고통을 해결해 달라, 돈없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 결국 기도는 엄청나게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투쟁에 불과한 것이다.


  성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명" 때문이다. 사명을 가진자는 작은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연연해 하지 않는다. 평탄하든, 고통이 있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면,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취의 목적이 수술에 있듯이, 우리의 삶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목적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장애를 제거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어떤 때는 고통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고통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할 수 있으면, 고통이나 고난을 피하라.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이것이 성경의 정신이다.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옆에서 보면, 마취시키는 것은 거의 장난같이 보인단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에는 우습게 여길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켜보면, 제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사람 죽일까봐 벌벌 떨때가 많다고 한다. "책임감이 능력입니다." 참 의미있는 말이다. 자신이 책임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해봐야 제대로 알게 되고, 놓치지 않고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책임지고 수행한 선교와 그냥 국외자로 참여한 선교는 사뭇 다르다. 책임감은 모든 전모를 파악하게 만드는 능력이 된다.  그러므로 삼일의 젊은이들여!  할 수 있으면, 책임을  받아들이라.(taking responsibility)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주역이 될 것이고, 능력있는 모습으로 변화되게 될 것이다. 덤으로 삼일교회에도 훌륭한 의사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