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안 2009. 11. 24. 11:56

 

말씀 : 요한복음 21: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주께서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은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기도 :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정말 괴수같고 소망없던 죄인을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하여 주시고 새 새명을 주사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제자 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바로 알고 또한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요. 감사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이 지났습니다. 각자의 기대와 바램이 있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더 할 수 없는 낙담과 절망감에 사로 잡혀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다들 뿔뿔히 흩어지고 각자의 갈 길을 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고향 마을로 돌아가 이전의 어부로 다시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 예수님의 사역이 무색하게 되고 만 듯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과 제자들에 대한 사랑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다시금 증거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시는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사역은 이미 계획된 것이고 제자들에게 증거된 바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과거 그 말의 의미를 몰랐을 뿐 아니라 믿지도 않았지만, 제자들의 눈 앞에 생생하게 나타나시므로 말씀을 성취하고 죽음을 이기는 능력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함과 믿음 없음을 발견하게 완전하게 깨지는 순간입니다. 아프지만 필요한 시간입니다.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의 확증을 주시고, 그의 그물에 고기가 가득차게 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서 세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여 더이상 자신을 제자라 인정할 수 없을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는 낙담해 있을 베드로의 그 찢어지는 심정을 예수님은 헤아려 주셨던 것입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치욕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도 바라보는 것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하지만 죽음을 이기시고 나타나신 예수님의 부활의 확증과 자기와 같은 배반자도 품으시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은 베드로의 무너지 자아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예수님 당사자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살리신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그랬겠지만 베드로에게 살아 있는게 살아 있는 것이었겠습니까?

 

계속해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핵심적인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에 걸쳐 베드로의 고백을 물으십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을 넘어 베드로의 거듭남을 위한 세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본심을 왜 몰라주시나라는 생각에 근심하여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진심을 고백합니다. 이전까지 불안하고 흐릿했던 베드로의 신앙이 분명하게 정립되는 순간입니다. 있지만 없는 것과 같은 것을 분명하게 형상화하는 순간입니다. 마음으로 확증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고백을 시작으로 예수님 승천 이후 믿을 수 없는 이적들이 일어납니다. 오순절 설교로 일시에 삼천명을 회개시키는 역사를 일으키며, 가는 곳마다 회개와 돌이킴의 이적이 일어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일으키시며, 복음이 불길처럼 전파됩니다. 죽음을 이기며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는 영광된 죽음을 맞습니다. 어부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치명적인 실수로 인하여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평생을 후회와 저주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을 한 생명이 예수님의 부활과 끝까지 책임지시는 사랑으로 인하여 위대하게 살아나는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이 사람이 변화되는 곳은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그 크신 사랑이 나타나고 받는 곳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러한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삶 속에서 깨닫습니다. 아버지 이 아들의 삶 속에서도 변화받아야 할 지독하고 고질적인 죄악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종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확증이 나타나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여 고질적이고 지독한 저의 죄가 변화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십시요.

 

저는 생각히기를 그래도 나는 세상을 착하고 바르게 살아왔다라는 교만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내 생각의 범위 내에서 타인에게 악을 끼치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 왔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것이 큰 실수이고 나의 삶을 올가매고 있는 족쇄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 있는 이 교만으로 인하여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자신이 답답했습니다. 몇년을 통해 몇번을 거쳐 죽을 것 같은 아픔을 맞보며 수렁으로 스스로 빠져들어갈 수 밖에 없던 이유를 몰라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모릅니다. 다시 도전할 심정을 주셔서 일어설때마다 이를 악물고 다짐 또 다짐을 했지만 똑같은 지점에서 또다시 도망치듯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은 저주와도 같았습니다.

매번 사람에게 상처받으면서 똑같은 상처를 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정말 한없이 초라하고 부정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과 기도와 주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로 인하여 현실속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교만이었습니다.

자기 의를 버리지 못하고, 높은 곳에 거하는 몸에 밴 습성,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염려와 고집, 타인을 바라보지 못하는 깊은 이기심, 자기 중심적인 사고, 큰 권세 앞에서 굴복하는 상처로 인한 닫아버린 마음,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는 무지

이와 같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를 스스로 막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에 갖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근본 원인은 교만과 욕심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뿌리 깊은 속성이 얼마나 죄악되고 추악한가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칼같은 눈과 깊은 통회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자기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고 부인할 수 밖에 없는 낮아짐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교만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드러나실 것입니다. 나로 인해 가려졌던 말씀의 능력이 실제 삶 속에 살아날 것입니다. 그곳에서 능력과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겸손이 하나님의 사역의 시작임을 알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더욱더 깊이 묵상하고 삶 가운데 적용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요. 감사하며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마디 : 겸손으로 시작해야 사랑으로 열매 맺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