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양을 먹이십시요.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장)
나는 안정을 원합니다.
나는 충만함을 원합니다.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왔지요.
언제나 결론은 하나님이었지요. 나의 생각이 앞서고 드러남으로 실망하였을 때 다시 돌아온 곳이 하나님이었지요.
예외를 둠으로 인함이었지요. 예외를 두지 않음이 맞지요.
하나님 한분을 위함이 모든 것을 바로합니다.
하나님 한분을 기쁘게 함이 나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결과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은 나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의 선물입니다. 권세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림이 먼저이어야 합니다.
최상의 하나님께 나의 최선을 드림이 옳습니다.
그 결과가 또 나의 최상이 됨을 알았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세차례에 걸쳐 강조하신 내용에서 나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구원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에게 그리하신 예수님의 희생과 순종으로 인한 은혜를 누리는 지금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진정 사랑하십니까? 예수님께 당신의 사랑을 확증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증거를 원하신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베드로에게 그 증거를 요구하시면서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깨어계십시요. 당신이 잠들어 있으면 당신의 양들은 어찌합니까? 당신이 죽고 양들이 죽습니다.
부디 깨어있기만에 집중하십시요. 평안과 안락을 그리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품을 그리워하십시요. 나와 동행하는 예수님을 사모하십시요.
여러가지를 보는 당신은 하나님의 평온함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버리고 예수님으로 사십시요.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나를 위해서 누구도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사실이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가장 확실한 기준이 됩니다.
자기의 육체를 가지고 자기의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눈 뜬 시간 모두가 자기부인입니다. 절대로 익숙해지기 힘든 절제요 노력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절망과 한계를 느꼈을까요? 그럴수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혼란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도전과 모험을 했던 걸까요?
상상 할 수 없은 만큼의 고통과 고난의 삶이었음을 짐작합니다.
그래도 그는 충만했습니다. 그의 하나님을 행한,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고백들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가장 행복했으며 가장 안정되었으며 가장 충만했습니다. 그의 고백들이 오늘 나의 방향이 됩니다.
나는 아직 그리하지 못하고 너무 멀게 느껴지지만 바울사도가 먼저 가신 증거가 있기에 막연함은 이미 물리치고 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는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렸습니다. 아무도 그리 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아무도 그리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저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것입니다.
은혜에 보답하는 곳에 질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양을 먹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성령님으로 역사하여 주시고 성령충만함을 부어주십시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이 종은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마디 : 질서의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