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갈라디아 2:20-21/2006.3.19.오전)_고영수목사님
새로운 사람(갈라디아 2:20-21/2006.3.19.오전)
1. 바울에게는 자랑거리가 많았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바리새인이요, 학문적으로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헬라의 학문을 섭렵하였고, 세상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로 살면서도 날 때부터 로마시민권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존경받고, 잘 나가는 특권층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조건들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한없는 사랑과 은혜에 굴복하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주가 되심을 인정하고, 그를 위하여 한 평생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잃고, 빛을 잃고 말았으며, 자신에게는 더 이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것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은 단 한가지만 자랑하면서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갈6:14)다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며, 무엇을 의지하고 있으며, 어디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며,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까?
믿음의 선배 바울이 예수 만남으로 이렇게 변화되고 말았는데, 오늘 우리는 예수님 만나서 얼마나 변화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본문 20절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2. 그것은 나의 신생, 즉 새로 거듭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유대인의 훌륭한 선생인 니고데모가 어느 날 밤중에 아무도 몰래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 때 주님이 그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니고데모는 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어머니 태 속에 다시 한 번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줄로 생각했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그 당시의 지성과 경험과 능력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인간의 지식이 끝없이 올라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지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다 아는 것 같은데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모든 것을 소유한 것 같은데 부족한 것이 더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마음은 영원히 살 것 같은데 실상은 백년도 살지 못합니다.
바로 이런 한계상황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사람의 거듭남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롬6:6절에 보면,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인생은 누구나 죄 가운데서 출생했기 때문에 죄에게 종노릇하며 살기마련입니다.
자녀들을 양육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죄 짓는 일은 혼자서 잘 배우고 잘 합니다. 아이가 죄 가운데서 출생했기 때문에 그의 속에는 죄의 법이 있고, 죄의 능력이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내 힘으로 살고, 내 능력으로 이것저것 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죄에게 묶여 있습니다.
그냥 놔두면, 죄의 결과인 고통과 영원한 사망과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바로 이 옛 사람을 버려야 고통과 저주와 영원한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거듭나야만 할 것을 말씀하셨고, 바울은 이 문제를 오늘 본문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며 나를 다스려온 죄의 모든 법과 세력들을 예수 십자가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몰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날 때부터 내 몸의 일부처럼 되었고, 내 인격과 삶의 주인이 된 이 죄의 세력이 내가 노력한다고 물러나집니까? 표범이나 얼룩말이 그 얼룩을 그냥 지울 수 있습니까?
껍질을 벗겨 내지 않고는, 다시 말해서 죽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새 사람이 되려면, 먼저 옛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도적질하는 사람이 그 버릇을 못 고칩니다. 노름하는 사람의 경우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열 손가락 다 끊으면, 발가락에다 화투장을 끼고 합니다.
죽지 않고는 못 고치는 것이 인간의 정욕입니다. 그러나 죽으면 다 끝이고 그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의 죽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이 온갖 더러운 죄와 허물들을 그가 내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4. 이것이 하나님의 죄인 된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이요 은혜인 줄 믿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아들을 통해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번 다시 우리 스스로의 죄와 문제들을 위해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죄의 값을 치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와 사망과 고통, 저주와는 상관없는 몸으로 사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이 은혜를 입을 수는 없습니다.
요1:12절에,「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자만이 입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초등학생 하나가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생각하기를, 「이렇게 좋은 예수를 나만 믿어야 하는가? 엄마 아빠도 믿게 해야지」, 날마다 전 도하는데, 부친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우선 너라도 열심히 믿으면 나중에 함 께 믿자고 둘러댑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맙니다. 장례를 치루고 돌아온 아버지는, 아들 이 그리워, 아들의 방에 들어가 옷도 만져보고, 장남감이나 책과 노트를 만집니다. 그러다가 일기장을 보는데, 죽기 며칠 전에 기록된 내용을 읽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빠 꼭 예수 믿게 해 주세요. 아빠가 예수 믿기 위해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죽기를 원합니다. 내가 죽어서라도 아빠를 예수 믿게 해 주세 요」. 그 글을 읽는 아빠는 충격을 받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 구나. 생명을 내어 놓고라도 믿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 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전세계의 수백만명의 청년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만든, c、c、c, 대학생 선교회의 부총재를 지낸 사람입니다.
5. 그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내 심령의 지성소에 주인으로 영접하고, 그를 내 입술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 우리는 그와 더불어 십자가에 죽고, 또한 그와 더불어 다시 살되 영원히 사는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생이요, 거듭남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살려고 하는 의지와 생명의 몸부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이후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는 이것도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믿습니다 하여도, 불신앙 할 때가 더 많고, 의심하고 낙심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믿음으로 살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정말 문제입니다.
6. 그러니 이 문제도 해결하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본문 20절의「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믿습니다 소리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전의 하나님 알지 못하던 때의 나의 삶이, 내가 주장하는 삶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의 지배를 받아 살 듯이, 이제 예수님은 내 마음에 모시고 나의 주인으로 섬기며 살면,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나를 주장하고, 나를 다스림으로 우리는 의의 삶을 살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안에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야구팀이 일본을 이기고, 미국을 이기고, 멕시코도 이겼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야말로 삼류 야구였습니다. 뭐가 달라졌습니까?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한국 대표팀은 맞는데, 그 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뀐 것입니다. 세계가 절찬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오신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삶과 미래를 바꾸어 주셨습니다.
본문에,「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란 말씀은, 어쩔 수 없는 죄인 되었던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하며, 보은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새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사람의 육체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새사람을 입게 하셨습니다.
7. 감기몸살로 며칠 목욕을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목욕하면 새 사람된 것 같은 기쁨이 있습니다. 오지를 여행하다가 오랜만에 탕 속에 들어가 쉬면 천국 같습니다. 하물며 십자가를 통하여 새 사람된 기쁨이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는 이 말은, 과거 죄의 법이 나를 지배하던 그 사람은 십자가에서 이미 못 박혀 죽었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과 생명의 법이 나를 주관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과거의 삶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새사람이 되고 보니, 과거에 자랑하고 최고로 여기던 것들이 너무 더럽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이 사람을 의롭게 할 수도 없으며, 행복하게도 할 수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예수 복음을 위해 살다보니, 복음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며, 의롭게 하며, 능력 있게 함을 알았습니다.
이 예수 십자가는 우리를 새롭게 하되 영원히 새 사람된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주님의 은혜와 능력이 내 삶 가운데 넘치며,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면 박을수록, 주의 긍휼과 위로하심에 내 안에 충만한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