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파/03 귀한 말씀

맹세의 교훈(마태복음5:33-37/고영수목사님)

핑안 2011. 6. 29. 12:46


1. 과학의 시대에서 인터넷만큼 사람들을 사로잡고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리에 나가보면, 지하철을 타 보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 정도는 너도 나도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고, 쉴새없이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전송하거나, 아니면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조사를 해보면 우리가 사람을 만나서 주고받는 말보다는 핸드폰을 통해서 주고받는 말과 문자의 양이 훨씬 많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말들이 거리에 넘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해 우리가 사는 공중에는 엄청난 말들과 문자들이며 정보들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마트 폰이 쏟아져 나오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갖 사람들이 트위터니 훼이스 북이니 하면서 가상공간에 글을 올리고, 올린 글에는 순식간에 수많은 댓글들이 달라붙는데, 비판하는 글도 있고 지지하는 글도 있습니다.
문제는 한 번 쓴 글은 언제까지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아니하고 전파를 타고 가상공간에 계속 떠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쏟아낸 말은 주워 담을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비판이며 몰매를 맞는 글이나 사진 같은 정보들도 지워버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이런 현상에 대해서 성경은 이미 예언하듯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의 말에 대하여 언젠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살다보면 말과 행동에 대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생각과 계획이 현실에서 어긋나기도 하고, 그래서 원치 않는 거짓말쟁이가 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남을 속이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사람들의 말에서 드러나는 심각한 폐단을 주목하셨습니다.
그들의 언어생활에 큰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나라나 민족이든지 다 마찬가지겠지만, 고대의 유대인들도 거짓말하고 거짓된 말을 감추기 위해서 맹세를 남발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이 아닌 것들을 고의적으로 말함으로 사람들 사이에 혼란과 불신이 커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여호와의 이름을 남발하며 맹세했습니다.
십계명에는 분명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면서 그런 사람을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남들이 믿어주기를 원하여 함부로 맹세를 남발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까지 증거의 도구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심으로 맹세 자체를 거부하셨습니다.

3. 왜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첫째로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중대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그렇게 쉽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분명히 정한 날짜에 내 손에 들어올 줄 알았던 돈이 도중에서 막혀 움직일 줄 모릅니다.
여행을 떠났다가도 급작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여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혼을 굳게 약속하고도 파혼 당하는 경우며, 백년해로를 약속해놓고 도중에 이혼하고 갈라서는 경우는 일도 아닙니다.
그 어떤 맹세를 해도 내가 원하는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약4:14에,「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 한가지는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해가 떠오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안개와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약속이나 장담도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분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표현했습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다렸으며, 그분의 도우심과 채우심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면 과욕이 생기고, 그것이 결국 인생을 파멸로 이끌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맹세 하는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목자로 모시면 그분이 우리의 모든 빈잔을 채워주시는 줄 믿습니다.
 
4. 둘째는 사람의 맹세는 먼저 자기의 과시에서 나오며,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을 나타 내려는 교만에서 맹세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남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 주려고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다름 아닌 교만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교만한 마음이 사람으로 하여금 우상숭배에 빠지게 만들고, 교만이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자신을 믿고 의지하게 하며, 교만한 사람들이 자신은 물론 남들까지 고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잠언에 보면 교만이 다툼을 일으키고,「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16:18)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맹세하는 대신에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행사를 맡기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우리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맹세를 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그 분의 발등상이요, 예루살렘 성도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일 그 어떤 것으로 맹세를 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5. 넷째는 이 세상의 모든 약속과 언약을 말씀대로 이루실 분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입의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오, 그 일을 약속하신대로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민23:19에,「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후대에 까지 잊지 않으시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오시리라 하신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를 통하여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아낌없이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왕들과 나라와 권세들이며 모든 지혜자들은 자신의 말대로 약속들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안개와 같이 연약한 인생이요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요 범죄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6.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 앞에 복받을 인생이 누구입니까.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무능함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 은혜,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바로 보고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무능한 인생이 맹세하는 것은 다 거짓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부터 진실만을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본문37에,「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나느니라」하였습니다.
“절대로, 참말로” 이런 수식어를 보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예”와 “아니오”를 넘어가는 것은 2가지 큰 죄악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허위이고, 둘째는 망령된 것입니다.
허위라는 것은 맹세를 어겼거나, 완전히 이루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고, 망령되다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고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7.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라고 했는데, 우리는 입술로 많은 허물을 얻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앞에 입술로 가장 많이 범죄한 시대가 말라기 시대였습니다.
말3:13에,「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하였고,「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함부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시인하고, 은혜의 하나님을 찬미하고, 그의 영광을 만방에 전파하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왜 맹세를 하면 안됩니까?
인간은 스스로 소원을 이룰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머리에 난 흰머리 하나 검게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어찌 남의 소원인들 이루어 줄 수 있겠습니까?
정말 우리의 삶 가운데 맹세가 필요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면 맹세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맹세와 꾸며낸 말들은 그리스도인의 품위와 가치를 떨어뜨리고, 심지어 자신의 말이 스스로의 올무가 되어 사로잡히는 비참한 결과를 낳습니다.
맹세의 결과는 모두 죄악입니다. 악으로 좇아 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맹세는 스스로 자신을 과신하는 것이며 동시에 남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그 분의 도우심을 구하며, 내 뜻이 아닌 내 맹세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한 가운데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