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요한복음 7:37, 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기도 :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를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배우지도 못하므로 평생 죄의 고통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죄인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찾아와 주셔서 독생자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위로받고 예수님을 배우며 따르는 천국의 삶을 살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죄의 속성을 알았고 자신의 깊은 죄성을 알게되었을 때 자신의 받은 은혜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되었을 때 무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죄인을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주의 수렁에서 건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삶 빚진 자로써 겸손하게 살게 하여 주십시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예수님을 닮아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요. 감사하며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의 관심사를 잘 살펴보면 예수님의 삶이 왜 그리 위대한 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높아지고 많이 갖고 존경받고 안정된 편리한 부러워할 삶을 살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절대적인 고통보다 상대적인 고통이 더 견디기 힘듭니다. 예수님한테는 그게 편했을까요? 예수님은 원래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성을 갖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갖는 모든 감정과 느낌을 똑같이 느끼십니다. 나와 똑같이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시기하고 판단하고 두려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참고 인내하셨습니다. 마귀의 온갖 유혹과 시험 앞에서도 자신을 부인하시고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그 길을 피흘리며 고꾸라지며 온갖 욕설과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며 절뚝절뚝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이 땅에서 33년의 성육신의 시간을 보내신 것은 최종적으로 십자가에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평의 통로를 여시기 위한 목적이셨고 또 우리에게 그 길을 알게하시므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선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 땅에 죄인인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가장 처참한 멸시와 저주를 받으시기까지 낮아지시고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사 다시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신 그 여정은 우리의 삶에 큰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낮이지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지만 영광을 위한 준비여정인 것이 예수님의 모범으로 명확하니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따라야할 약속된 의무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물과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에게 물은 없으면 죽습니다. 절대적인 필요입니다. 목마른 자들은 다 내게로 와서 마시고 그 안에 생수의 강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병든 자는 고쳐주시고, 귀신들린 자는 자유케하여 주시고, 죄인은 용서하여 자유케 하여 주시고, 주린자에게는 채워주셨습니다. 아무런 조건이나 요구없이 주면서 천국으로 초청하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물은 비로 내리면서 산위에서 들로 개울로 강으로 바다로 아래로만 내려옵니다. 위로 올라가지를 않고 아래로만 아래로만 내려 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사용할 수 있도록 아래로 아래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수증기로 증발하여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천대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의 친구로 낮아지시며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셔서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섬기는 종이 되어 주셨습니다. 세리와 창녀와 귀신들린자에게 따스한 친구로의 손길을 내미시면서 그들과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물은 산에서는 약수, 논에서는 농업용수로 쓰이고, 가정에서는 식수로 쓰이고, 공장에서는 공업용수로 쓰이고, 하수처리장에서는 정화수로 쓰이고, 화장실에서는 세척제로 쓰입니다. 언제 어디를 가나 그곳에 맞는 용도로 알맞게 쓰입니다. 만일 물이 자기 의가 있어서 나는 귀한 존재이니 더러운 용도로 사용되기는 싫다라고 한다면 큰일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어디를 가나 자신을 그곳에 맞추셨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환경을 자신에게 맞추지 않고 자기를 환경에 맞추시는 융통을 보이십니다. 부드러움입니다. 가난한 자와도 융법주의자와도 제사장과도 이방인과도 장로들과도 누군든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어울릴 줄 모르는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던가요? 어느 누구와도 다툴 줄 모르는 것이 물입니다. Peace Maker입니다.
그릇이 작다고 깬 적도 없고 그릇이 크다고 투정하지 않고 언제나 평화주의자로 살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다툰적이 없으시고 말고의 귀까지 붙여 주시면서 칼을 집어 넣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 물과 같이 절대 필요한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 사랑하고 싶은 그분과 같은 삶을 사는 내가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렇게 삽시다. 힘들어도 서로서로 기도해 주면서 힘이 되어 주면서 그렇게 삽시다.
나의 생각과 삶이 잘못 되었음을 깊이 회개드립니다. 각박한 도시 생활로 이기적인 길을 택하며 자신의 성격을 탓하며 어쩔 수 없다며 살아왔는데 예수님의 삶이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삶이 물과 같이 살라고 하시니 자신을 부인하면서 예수님을 배우면서 기도하며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한마디 : 물과 같이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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