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1:28∼30 인간이란 시간 속에 사는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이면 누구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란 시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갑니다. ‘오늘’이란 어제와 내일의 중간에 끼인 현재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오늘’이란 날은 어제의 닦아놓은 터전 위에 세워집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 터전을 닦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제보다, 내일보다 더 귀중한 ‘오늘’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선용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 속에 사는 존재인 인간에게 오늘의 시간은 어제의 경험과 내일의 기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꿈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지나온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여러 가지 떠올리기도 싫은 실패의 흔적이나 후회스런 삶의 기억들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실패, 상처 등 과거의 경험에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무거운 죄책감으로 짓눌림 당할 때가 많습니다. 다가올 ‘미래’의 시간을 생각할 때 가장 확실하면서 필연적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이 죽음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과 허무감 그리고 유한성을 절감합니다. 이것이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 실존의 한계입니다. 이러한 시간이 지닌 한계성을 인간이 극복하지 않고는 누구도 ‘오늘’이라는 시간을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삶으로 영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이유는 인간의 한계성을 온전히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죽으심)의 사건은 우리의 과거의 온갖 죄책과 무거운 짓눌림에서 우리를 완전히 자유하게 해준 ‘믿음’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죽음’이라는 인간의 유한성을 벗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 ‘소망’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크로노스) 속에서 경험해 오고 있는 고독과 좌절감, 그리고 허무감에 사로잡힌 인간 실존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과 자유를 되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카이로스)을 믿음의 눈을 통해 바라봄으로써 감격과 기쁨과 소망을 품은 의미 있는 순간으로 ‘오늘’을 인식하면서 창조적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어야 할 오늘의 복음입니다. 과거의 죄책감과 미래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히 12:2). 그분은 인생의 무거운 짐 진 자들을 향해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오늘’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오늘’이란 시간은 여러 가지 문제에 사로잡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요청되는 때입니다. 고난의 때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종말적 긴장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는 ‘오늘’이라는 때를 잘 분별해서 지혜롭게 선용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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